2024년 3월 27일 : 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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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금

만나러 와주어요. 여기가 불가능한 곳이라도

악보집이 아닌 음악집입니다. 세상의 소리를 일정 기호로 기록한 '악보집'이 아닌, 단 한번 숨결이 닿아 연주된, 다시는 반복할 수 없는 '음악집'이라는 개념이 시와 닮았다는 점에서 착안해 이런 제목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시는 먼 곳에서 안부를 묻듯 “당신, 듣고 있어요?” 소리를 냅니다.

산문집 <영혼의 물질적인 밤>, 소설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에 이어 이장욱 시집 <음악집>이 출간되었습니다. 공교롭게 최근 1년 내 출간된 책의 장르가 모두 달라 다채로운 세계의 갈래를 가늠하며 함께 읽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오즈 야스지로, 필립 시모어 호프먼, 첨밀밀, 등려군 같은 추억이 어린 이름들과 그 음악이 단 한 번 재생되었을 그 공간들이 함께 떠오릅니다. 관객이 많지 않은 극장에서 오즈 야스지로를 보고 쓸쓸히 걷던 그 쓸쓸함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음악은 결코 전과 같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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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쪽 : 599번. 숫자가 마음에 들었다. 600번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 어딘지 불균형한, 위태위태한, 한끗이 모자란, 그런 숫자다. 한때는 시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599번처럼 위태로워야 한다고, 한끗이 모자라야 한다고, 그렇게 안타까운 것이 있어야 한다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통권 600호 기념―축하합니다」, 『문학과사회』 2024년 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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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2008년 <하이킹 걸즈>를 읽고 자랐을 어린이, 청소년들도 충분히 어른이 되었을 만큼 시간이 흘렀습니다. <분실물이 돌아왔습니다>는 어른을 위한 소설인데요, 평소와 다른 독자를 상상하며 이 이야기를 만들 때의 마음이 궁금합니다.

A : 제가 썼던 청소년 소설 속 10대 주인공이 20대가 된 모습을 상상해 봤어요. <하이킹 걸즈>의 은성이나 <닌자걸스>의 은비, <판타스틱걸>의 예슬이가 저에게 화를 낼 것 같아요. “뭐예요, 언니! 어른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더 힘들잖아!”라고 말이에요. 어른이 되어 실제로 제가 느낀 감정이었거든요. 어른이 된 독자들을 위해 애프터서비스를 하는 마음으로 썼어요. 10대를 잘 버티고 견딘 것처럼 20대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다독이고 응원하고 싶었어요.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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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MD는 지금 스마일

사진이란 정말로 신기함. 옛날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영혼을 빼앗기는 듯한 느낌이 이따금 들지 않니? 난 들거든.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렇게나 많이 사진에 찍혀버렸으니까 영혼이 완전히 닳아 없어졌겠네? (189쪽, (「♡ 1 0 0 4 7 9 ♡」)

딱 이 맛을 기다리셨을, 김사과의 소설집이 출간되었습니다. 현대, 도시, 절망, 욕망, 인스타그램, 척, 예술가, 계급, 향락, 귀신 같은 키워드를 엮어 톡 쏘는 톡식(toxic)한 이야기로 맹렬하게 질문합니다. 도시가 지긋지긋한 사람, 그렇지만 이 외의 대안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 사실은 이 속도감에 중독되어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정말이지 인간들에게 진절머리가 난다"(25쪽, 「귀신들」) 같은 날카로운 문장을 만나면 (대안을 모르더라도) 우선 속은 시원합니다. 이 세계를 소화하는 게 버거워 늘 소화불량 상태인 저 같은 사람에겐 딱 맞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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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는 지금 : 은행나무

지금 은행나무 국내문학팀은 리뉴얼된 『Axt』를 열심히 굴려가느라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매일을 보내고 있답니다. 올해 신년호부터 표지와 콘텐츠, 본문 디자인까지 대대적인 리뉴얼을 감행했는데요.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키워드가 생겼다는 점일 거예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획을 짜다 보니 들어가는 품이 전에 비해 몇 배는 더 많아졌지만 그만큼 뿌듯함도 함께 느끼고 있어요. 주 1회 잡지 기획 회의를 하고 있는데, 떨어지는 당을 다시 채우려 과자를 한 주먹씩 먹게 되고…… 덕분에 운동까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웃음)

『Axt』 편집부가 고른 53호 키워드는 ‘빌런’입니다. 3월은 신학기이기도 하고, 따뜻한 날씨 덕에 자주 밖에 나가게 되니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는 달이죠. 그만큼 갑작스럽게 맞닥뜨리는 ‘빌런’도 곳곳에 있을 거예요. 하지만 현실 속 빌런과는 달리 소설 속, 영화 속 빌런은 서사 구조상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도 합니다. 조커 없는 배트맨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요. 그래서 『Axt』 편집부는 이번 호를 통해 ‘빌런’이라는 키워드를 문학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사유해볼 수 있는 기획을 준비하기로 했어요.

53호 interview에서는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출간한 정세랑 소설가와 ‘빌런’을 주제로 서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신간에 대한 이야기와 빌런에 대한 고찰, 사진과 함께 보내온 정세랑 작가의 근황을 함께 실었으니 문학 독자라면 누구든 설레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을 거라 자신해요. 한편 비대면 톡 좌담으로 진행하는 chat은 ‘셜록 홈즈, 빌런으로 읽기’라는 주제로 『셜록 홈즈: 주홍색 연구』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빌런이 작품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모리아티와 아이린 애들러는 정말로 빌런인지, 그렇다면 셜록 홈즈에게는 빌런의 요소가 없는지, 2024년에 읽는 『셜록 홈즈』는 우리에게 어떻게 해석되는지 등 다양한 시각으로 『셜록 홈즈』를 재조명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그리고 박참새 시인, 김홍 소설가, 정시우 영화 칼럼니스트가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빌런’에 대한 에세이, 『VOSTOK』 박지수 편집장의 cover story까지. 라인업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나요? +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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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시선 500호 출간

1975년 신경림의 <농무>를 시작으로 출간을 시작한 창비시선이 500호를 출간합니다. 안희연, 황인찬 시인이 > 401번(2016년 출간, 1948년생 시인 김용택의 <울고 들어온 너에게>)부터 499번까지(2024년 출간, 2000년생 시인 한재범의 <웃긴 게 뭔지 아세요 >) 400번대에 이름을 올린 시인들의 작품 90편을 엮었습니다.

제가 처음 시를 읽던 학창시절, 그야말로 '라떼'는 '순수/참여'라는 기준으로 시를 구분해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기준으로 시를 말하는 사람을 요즘엔 잘 보지 못했습니다. 첫 시집을 엮는 시인들이 대거 이름을 올린 400번대의의 시인 목록을 보면 한국시도 움직이는구나, 생각이 들어 뭉클했습니다. 정호승과 조온윤이 한 호흡으로 읽히는 시집의 흐름에 몸을 맡겨 이 시차와 파도타기를 하면 어떨까요. 500번 기념 시선 <이건 다만 사랑의 습관>과 시인이 즐겨 읽는 시를 엮은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가 함께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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